생각의 흐름대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요즘 생각을 하는 내가 무섭다.
언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까 몰라 생각을 그만두는 게 오히려 나라는 인간의 존속을 위하는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의 생각은 위험한 선을 그리며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죽는 다는 행위가 머지않은 게 아닐까. 매일, 날이 갈수록 찾아드는 우울의 빈도는 잦아지고 있으며 이어지는 생각들에 헛구역질이나와 멈추기를 수십. 그 사이에 짖이겨지고 너덜너덜해져서 걸레짝 같아져버린 정신과 다시 한 번 더 곱씹어지는 망상들의 틈바구니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한 줄기 이성이 발버둥치듯이 이젠 그만해야 할 때라고 제동을 걸어 생각 그 자체를 멈춰버린다. 아마 그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던 헛구역질이 아닐까 생각을 하지. 이 정도의 지독한 우울은 처음이 아니야. 그래서 좀 더 위험하다고 느껴. 작년 말과 올해 초, 내가 답지 않게 술을 조절하지 못 하고…아니, 하지 않고 취기에 몇 번이나 생각을 놔버렸던 적이 있었다. 그 중 몇 번은 커터칼을 손에 쥐었었지. 그어버릴까, 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지. 다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프다는 걸 알면서 다시 반복해 버릴까, 싶었지. 사실 되게 쉬운거야. 엄지만으로 날카로운 날은 꺼내질거고, 꺼내진 날을 손목위에 가져다대고 약간의 힘과 슥 하는 밀림만 더해져서 그어버리는거야. 처음엔 피가 벌레처럼 스믈스믈 기어오르다가 분수처럼 한 번 튀고 그 뒤론 터진 수도관처럼 또 새어나오겠지. 그러고보니 그게 벌써 15년이 넘었네. 그렇게 피가 나면 나는 또 둘 중 하나를 택하겠지. 손목을 부여잡고 병원으로 가거나, 그대로 그만두거나. 혼자 조용히 집에서 그렇게 조용해지겠지. 손목은 화끈거리고 아플거야, 이미 겪어본 경험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경험이라 생소할지도 몰라. 또 무서워 뛰쳐나가게 될까, 그땐 어렸으니까 그랬지 않을까, 어른이 된 지금은 어떨까. 뛰어나가지 않으면 나는 그때보다 나이를 먹었음을 증명하는 걸까 어른이 되었다는 걸 그렇게 확인하게 되는 걸까. 뛰어나가지 않으면 어른인건가. 그게 어른인가. 아니면 어른이 아닌가.

진짜 사는 거 너무 힘든데.

굶어죽지는 않잖아. 여행도 잘 가잖아. 맛집도 잘 찾아다니고 술도 잘 먹고 매끼니 거를 일 없이 잘 챙겨먹고 운동도 매일 하고 좋은 사람들이랑 웃고 떠들며 잘 지내잖아. SNS 보니까 매일이 행복해보이던데. 누구는 없어서 못 먹는거야. 누구는 월에 200도 못 벌어. 취업도 못 해서 빌빌대는데 넌 취업했잖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 다니잖아.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어? 나도 너 처럼 살고 싶다, 야. 이 시대의 진정한 YOLO가 너라고 생각해. 하고싶은 거 하며 살잖아. 부럽다, 야.

나에 비해서 잘 실잖아, 뭐가 그렇게 힘든데?

그러게, 뭐가 그렇게 힘든걸까.
나 정말 잘 살고 있나봐, 이렇게 부러워해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말야.
나 정말 행복하다며 웃어야 하나봐, 이렇게 너네가 시기하니까 말야.
근데 나 정말 힘들어, 그렇게 말하기 전에 내 말 부터 이해해주면 안 될까.
비교가 아니라 겉만 멀쩡해서 간신히 버티는 나를 좀 봐주면 안 될까.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이건 아주 많은 것들이 엉킨 실타래 같은거야, 그치.
사는 것과 가치의 가치. 존재 본연의 의미와 본질이란 단어가 부여하는 본질의 추구. 정의된 사실들에 대한 의구심과 삶이 주는 도태의 모순성. 살아간다는 건, 죽어간다는 것이란 것에서 오는 모순까지. 죽음과 경계에 놓인 인생이란 철학과 다름의 차이를 틀림이라 지칭하며 주장하는 저 인간들의 무지성과 그 사이에 끼여든 나와같은 피해자들. 그들과 나는 정말 다른가 라는 번니와 멈춰지지 않는 질문. 이유가 필요한 사회와 책임이 강조되고 강요되는 집단의 족쇄. 나를 둘러싼 기대와 부응하기 위한 고군분투, 허명과 감투로 포장 된 노력들과 빛을 보지 못 한 그늘 속 버려짐들. 그 노력은 정말 나의 의지인가 누군가의 시선인가. 인산인해 사이에서 남겨진 혼자와 꺼진 방 안에서 나와 시선을 마주친 그 존재의 시선. 입꼬리가 귀에 걸리듯 찢어지게 웃던 그것과 입꼬리가 바닥에 닿듯 쳐졌던 슬픔에 섬뜩해보였던 까만 눈. 던졌던 질문은 누굴향한 것이었고 대답한 이는 누구이며 그것은 정녕 옳다고 말할 수 있는 대답인가. 정답이 없는 물음에, 문제에 왜 모두는 이것만이 정답이라 강요하고 강조하며 본인조차 모르는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마는가. 원래라는 건 언제부터 원래인가. 원래 나는 이러한데 왜 당신의 나는 그러한가. 나는 변했는가, 당신의 내가 변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왜 항상 내가 뱉어야하고 뱉은 답의 근거와 논리와 증거까지 모두 내가 보여야 하는 건가. 보인들 저마다의 판결문을 든 판사들이 모여 입방정을 떨기 시작하지, 정답인지 오답인지. 나의 이야기에 답이 나이거늘 어째서 그들의 손에 들린 자로, 가위로, 칼로 나를 제단하려 하는거 그리고 제단되어 지는가. 그것은 그어버릴 용기조차 없는 나를 향한 당신의 판결인가. 신인가. 그래서 잣대를 내세우는가. 존엄하다 일컫을면서도 왜 한 사람 개인을 굴레라는 둘레에 가두려 하는가. 예수인가, 부처인가, 코란의 신도인가, 알라인가 마리아인가, 옥황인가 이도 아니라면 사탄인가. 흑인가 백인가. 백은 왜 백이며 흑은 왜 흑인가. 세상은 어째서 둘로 나뉘어 경쟁을 자초하는가. 흑백의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이 왜 입으론 다채로움을 찬양하는가. 그리고 그 세계에 살아가는가. 좌익인가 우익인가. 결국은 한 마리 새의 몸퉁이에 붙은 날개짓에 불구한데 모두 우리일 순 없는가. 해와 달과 별은 동에서 와 서로 가는데 나의 오늘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 버리는 가. 음은 양이고 양은 음이고 무와 유는 무엇이 다른가.

나와 너는 무엇이 다르며 그래서 무엇이 문제였고 처음 던진 질문은 한참에나 글이 이어진 지금 무엇이었는가. 생각지 못 하고 기억치 못 할 정도였다면 그 물음은 정말 중요한 물음이었는가. 그저 가십거리로 씹히고 버려질 단물 빠진 껌과 같은 흔한 물음은 아니었는가. 결국 답을 찾지 못 하였거늘 그러지 못 했고 하고 하지 못 할 질문이거늘 중요했는가. 고뇌인들 번뇌인들 백팔번을 한 들 그게 중요했던가. 본질이 무엇이고 무엇이 중요했는가. 중요하다면 중요한 이유는 또 필요한 것인가. 중요한 것을 위해 다시 또 중요한 것을 찾아 헤매야 하는 가. 그게 중요한가. 판별이 되었다면 그것은 남의 시선이 아닌 너의 견해가 맞는가.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가. 너는 정말 너로써 존재하며 네가 네 이름 석 자를 꺼내 그 앞에서 당당해 질 수 있는가. 뭇 기백이 넘는 시선과 삿대질을 한 낱 아해인 네가 감당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가. 그건 자신인가 자만인가. 자만과 오만은 또 무엇이 다른가. 실력이란 단어를 가벼이 입에 올릴 정도로 노력은 하였는가. 아니라면 어디서부터 아닌가. 원래부터인가. 중요한 것은 지금 너의 어디에 남겨뒀는가.

그것없이 너는 너인가.

Share

남아있지 않기를

이 삶의 끝에 부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기를.
미약한 한 줌의 숨조차 내게 남아있지 않기를.

그렇게 조용히 아는 이 하나없이
스러지고 지는 해와 달, 별처럼 소리없이 남아있지 않기를.

나의 부재에 울어주는 지금이 안녕이더라도
그래서 남을 지 모를 당신에게도 무리없이 남아있지 않기를.

없기를, 부디, 남은 것이.

내 삶이 여기서 끝을 맺어 겨우 점 하나라
아무렇지 않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더라도
잠시 머무른 이 자리에 무엇도 남아있지 않기를.

울지 말기를.

나를 잃었기에 잊지 못 한다 하더라도
이미 이전의 나는 남아있지 않을테니
부디 마지막 나의 바람이건데, 흩날리지 아니하고
우리와 너의 나로써 내가 당신께.

남아있지 않기를.

Share

불면증

자려고 누웠는데 잠에 들지 못 한다.
뒤척이는 몸 만큼이나 생각들이 엉켜서
눈을 떴는데 눈을 떠도 보이는 것들이
까맣긴 마찬가지라 의미가 있나싶었다.

1시간쯤 된 것 같다.

자야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눈을 감다가도
왜 자야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눈을 뜬다.

내일은 회사에 가야지.
아침에 운동도 가야지.
그러려면 지금 자야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해야지.
서른년을 넘게 살아도
해야하니까 해야하는 건 익숙해지질 않는다.

초등학생때는 그래서 방학이 좋았지만
그래서 방학숙제는 겁나 싫었었다.

글쓰는 건 진짜 재밌는데
언어 시험은 진짜 싫었었다.
뭐,그래도 내 유일한 점수 희망봉이었지만.

해야하니까 하면서 살아가는 삶은 옳은가, 라는 질문을 던진들
애초에 질문의 옳은가 라는 전제가 잘 못 되어있기에
답을 요구하는 것조차 옳지않은 것이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묻는 것에
답을 바라는 것도 답이 아니겠지만
애초에 답인들 답이라 답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