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마지막 글

긴 글입니다.
온전히 담은 제 생각입니다.
탓을 할 의도도 의사도 담지 않은 흰 글입니다.
토로가 아니라 정리입니다.
올해도 이제 3일 남짓, 기울었으니까요.
서장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감사합니다.

나는 회사에 일을 하러 간다고 생각지를 않는다.
나는, 회사에 개발을 하러 간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를 보는 이들과 내가 가진 모순의 시발점이었다.

中一

개발을 하다보니 그 자체가 재밌더라구요.
뭐, 그러다보니 전공도 남들보다 과하게 찾아듣는 편이었고
학점이 모자라면 청강,도강을 하고…
그렇게 살았더니 4학년이 되었고 취업을 해야하더라구요.
그래서 뭐..개발하면서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소엔이라는 조직이 이 회사에 있다는 걸 친한 형에게 듣게 되었고 거기 가면 미친듯이 개발할 수 있다길래,,하하..그래서 지원한 겁니다.

다른 회사 많은데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나는 저렇게, 솔직하게 말을 했었다.

샵 인클루드 꺽쇠열고 스탠다드아이오 점 에이치 꺽쇠닫고 엔터 엔터
보이드 메인 괄호열고 보이드 괄호닫고 중괄호 열고 엔터
프린트에프 괄호열고 큰따옴표 헬로월드 돈표시 엔 큰따옴표 괄호닫고 세모콜론 엔터
중괄호 닫고 컨트롤 에프오

그리고 까만 창에 띄워진 흰색 글자, Hello World.

..저 두 단어만 제대로 안 떴어도, 이렇게 개발에 재미를 붙이진 않았을텐데.
하다 못 해 Hello World 안에 숨어있는 Hell World를 그 때 알아챘더라면 이런 인간이 되진 않았을 텐데ㅋㅋㅋ…
이미 늦어버린 후회라, 스무살 마음에 직접 띄운 cmd 창은 신기했고
1.44MB 디스크에 .exe 파일만 마우스로 끌어다 놓으면 프로그램을 설치한 거라 생각하던 컴맹은 개발계의 발을 담그게 되었지.
늪은 딛어봐야 아, ㅈ됐다 라고 느끼는 거라지.

뜻은 하나지만 의미는 여럿이라..
머릿속으로 꽁냥댄 것들을 코드로 옮기고 그게 작동이되는 거.
복잡한 연산, 꼬인 것들, 문제들, 처리과정들…뭉텅그려 로직이라 불리는 것들이
까만 바탕, 흰 글자 Hello World 처럼 실체화 되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 하겠지만 나한텐 재밌으니까.
그게 나한텐 개발이라서 이러고 있는 거지.

조금 일찍 출근하고 조금 늦게 퇴근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 접할 수 있는 재미거리들이 회사에 있기 때문이야.
당연한 소리잖아?
나보다 훨씬 실력 좋은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고등 코드들..
어디가서도 구할 수 없는 군침거리들이 거기에 있는데.
게임으로 치면 유니크 아이템들이 가득한 던전에 들어가는 거라고.
이리가고 저리가도 레어,유니크,에픽 템들이 보이는데
무게 게이지 만땅 채울때까지 줍줍 해야지.

그리고 거기에서 운수 나쁘게도 모순이 시작되었지.

나한텐 회사가 그런 곳인데
대부분의 이에겐 회사가 그런 곳이 아니고
그런 곳이 아닌 곳에 이해 안 되는 내가 있고
이해를 하는데 이해를 바랄 순 없는 거고
왜냐면, 내가 왜? 이기 때문이라서.

中二

이런 글, 많이도 썼다가 지웠었다.
1년여동안, 회사에 적응하는 동안.
욕을 쓴 적도 있었고
한탄을 했던 적도 있었고
실의도 끄적거렸었고
다짐도 몇번이고 했었다.

근데 결국은 쓰다 만 채 다 지웠었고
하나도 올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올리지 못 했다.

내가 정리가 안 되어서.
이해를 다 하지 못 하여서.
정말 그런 건 아닐까 의심하느라.

그래서 의심을 의식했다.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다.
나는 돈을 받고, 일을 하러 회사에 간다.
일은 일이다.

일인데 어떻게 재밌어요?
이 짧았던 한 문장의 시발점도 여기였다.

근데, 그게 안 된다.
나는 글러먹은 거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를 연타하는 것 만큼 적절한 표현이 이 순간 떠오르질 않는다.

어쩌겠냐..잘 하진 못 해도..코드를 보는 게 재밌는데…
남들이 만든 로직을 따라 흘러가는 것도 좋고
막히는 걸로 머리 싸매는 것도 즐겁다.
웹이든 임베디드든 뭐든 간에…
뭘 만들든, 만드는 행위..개발 그 자체가 재밌는 걸..

계속 될 거다.
그런 곳이 아닌 곳에 나는 있을 테니까.
…그런 곳이라 하여도 나는 글러먹었으니까.

잘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 욕심은 나한테 과분할 뿐더러
진짜 잘 하는 사람 앞에서 무의할 뿐이다.

그냥 재밌으니까.
그냥 하고 싶으니까.

그냥. 왜? 그냥.
구구절절 시시콜콜 한 거 다 빼고, 그냥.

회사를 다니고 있고 직장인이라고 이젠 말하지만
나는 회사원이기 전에 개발자이고 싶다.
잘 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하는, 하고 있는 개발자.

  • 2015년 마지막 월요일에 쓰기 시작해서 3시간 남짓, 생각들을 쌓고 정리해서…그리고 날을 넘겨 올 해 마지막 화요일에, 끄적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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