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무것도.

스푼 하나를 들고 냉장고를 열어서
선물 받은 수제 잼을 한 숟갈 퍼먹으려 했는데
뚜껑을 열었더니 하얀색 곰팡이가 끼어있었다.

어쩐지,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깝다, 라는 생각보다
슬프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금요일인가, 목요일인가…
회사에서 받아온 오렌지를
냉장고에 넣어뒀는데
본가에 다녀와서 오늘 먹을랬더니
단 맛이 다 빠져버려서 맛이 없길래
그냥 청소하면서 버려버렸다.

아,같이 받아온 수박은 맛있게 먹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청소를 하고 말끔히 털어낸 이불위로
폭하니 누워서 눈을 감았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한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게 이상했다.

낮게 울음하는 냉장고 모터소리 외에
내 숨소리만 들려서 숨을 멈춰봤더니
내가 지금 혼자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단상을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나온다.

곰팡이가 슬어서 냉장고에서 꺼내진 잼도
단 맛이 빠져서 쓰레기더미가 된 오렌지도
책상 귀퉁이에 쌓인 전공 서적도
무심히 나를 내려다보는 부모님의 사진도.

포근한 이불에 묻혀 숨을 멈췄던 아주 잠깐의 나도,
그리고 바스러지고 뭉개진 내 감정들도.

그저 이렇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살아가는 매일이 내겐 버거운데
한 걸음만 뒤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 때문에
참았던 숨이 몰려 한 숨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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