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들은 척 한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척이 아니라 진짜 못 들은 건데,
그 사람이 보기엔 내가 못 들은 척 하는 걸로 보였나 보다.
이미 확정적인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그 사람의 눈에 뭐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아, 어차피 내가 말해도 믿을 생각이 없구나
그리고 내가 가만히 있자 다분히
본인의 입장에 입각한 비수들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느정도는 받아 넘겼는데,
넘겼다 생각한 것들이 시간이 지날 수록 곪아서 썩어있었다.
썩은채로 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내 귀가 좋지 않다는 걸 모른다.
그러니 그렇게 생각한 거다.
……
어릴 때부터 제일 익숙했던 소리는
무서운 공장의 기계음이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섬유공장에서 일을 하시고 지금도 일을 하신다.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하시고 퇴근은 대중없다.
1년에 쉬시는 날은 여름휴가 5일 남짓, 그게 전부다.
일요일은 당연히 쉴 거 같지만,
멋 모르는 소리다.
난 우리 부모님이 공장에 나가지 않는 날을 본 적이 없다.
지금도 주말 저녁에 전화를 걸면 그러신다,
어, 아빠 이제 퇴근하는 중이야.
……
어릴 때, 살았던 집은 늘 공장 한켠 셋방살이였다.
처음 공장에 들어가 본 게 아마 4살 때일거다.
섬유공장 특유의 실냄새와 쿠쾅,웅쾅 거리는
어린 아이가 듣기엔 무섭기 짝이 없는 베틀 기계소리.
고함을 치지 않으면 바로 옆 사람의 말 조차 들리지 않는
그 소음더미속에서, 방에 홀로 남은 게 싫던 꼬맹이는
어머니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박스더미 위에 앉아 놀았다.
그러다 베틀에 실덩이가 비어가면
잔뜩 쌓인 실타래 중 하나를 들고 뛰어가
빈 실타래를 빼고 갈아끼웠다.
공장의 기계는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어머니는 주간반, 오후반, 야간반을 3주 로테이션으로 일하셨다.
아버지는 주간반이지만 사실상 주간+오후반이었고
집에와서 찌든 기름때를 씻을때면
10시에 시작하던 드라마가 다음회 예고편을 방송하고 있었다.
매주 금요일,토요일.
다음날 학교를 가지 않는 때에 내 잠자리는
언제나 시끄러운 공장 안이었다.
부모님이 일하는 모습을 보다가
실타래가 가득하다 비어버린 박스를 바닥에 깔고
그 안에 옹기종기 몸을 구겨넣어서 잠들곤 했다.
그러고 있으면 새벽일이 한가해질 때쯤
아버지가 안아서 방에 데려다 주었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제일 익숙했던 소리가 공장의 기계음이다.
집에 손님이 오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TV 볼륨 좀 낮추라고 한다…
늘 기계 속에 파 묻혀 살다보니
부모님도, 나도 모르는 새에 소리를 듣는 역치가
보통 사람들에 비해 많이 높아져 있었던 거다.
그 덕인지, 언젠가부터 나한테 난청이 생겼다.
소음성 난청이라고 하는데 말 하는 건 들리지만
명확하게 들리지가 않는다.
이게 웃긴 게 늘 그런 것도 아니라서
잘 못 듣는다고 주변에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예전에 한 번 말을 했는데
말을 알아 듣는 걸 보고, 구라까지 말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 이후론 미리 말 하는 걸 관뒀다.
그냥 못 알아들으면 눈치를 살핀다.
웃어야 될 거 같으면 웃고
고개 끄덕여야 할 거 같으면 고개를 끄덕인다.
차라리 그게 나도 남도 편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래서 그 날도 입을 닫았던 거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 날도 눈치를 봤던 거다.
글로 써도 구구절절한 이 이야기를
그 상황에서 그 사람에게 납득시키려한들
이해해 줄 리 없다는 시선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거짓없는 내 이야기가
한낱 상황을 모면하려는 변명으로 치부당하는 게 더 싫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잘려고 누웠다가 오랜만에 끄적거리는 게
제법 길어져서, 누가 제대로 읽기나 하겠느냐만은.
근데 쓰고보니 나 엄청 효자같네.
잘 했어, 어린 날의 나. 니 덕에 효자 코스프레도 좀 했네.
그러니까 좀 잘해라, 지금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