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없어서, 소년은 방황한다

살아가면서 후회하는 일들은 여러가지고 있다.

다섯 살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죽마고우를,
고작 게임 캐릭터 때문에 싸우고 절교를 했던 일.

어릴 때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주인어르신 몰래 사탕을 훔치고,
맛있다고 까서 먹었던 일.

좋아했던 여자아이한테 좋아한다 한 마디 말 못 하고,
멀찌거니 서서 주변만 돌다가 그대로 묻어둔 일.

오늘도 주말을 멍하니 보내고,
돌아오는 월요일이 되어 ‘아 더 격하게 놀 걸!’하고 후회하는 일.

여러가지가 있다.
여러가지가 다양하게 있다.
여러가지가 다양하게 누구에게나 있다.

몇 개 일 수도 있고
몇 십개 일 수도 있고
몇 백개 일 수도 있다.

그 많은 수를 일일이 세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나도 그 다난한 후회들을 모두 기억하진 못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하는 후회가 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라는 후회.

그런 이야기 주구장창 듣잖아.
사람은 태어났을 때 부터 본인이 해야 할 소명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근데 그런 거 없어.
사람이 태어났으면, 그때 이미 내가 해야 할 소명은 다 한거야.
태어났으면 그 목적을 다 한 거야.
그러니 이제 살아, 살아가면 되.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말, 하나

2007년,

‘이번에 안 오면, 니들 평생 후회 할 걸? 킬킬킬’
이라고 조악하게 웃던 사람이 있다.

서커스가 이번 콘서트의 모티브라고 하면서
사람이 천장에서 휙휙 날아다니고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 못 볼 쇼를 준비했다고,
그것도 우리 식구들을 위해서.
역대급에 역대를 초월하는 역대급이라고 떠들어댔었다.

해따윈 눈길도 주지 않는 새벽 밤의 늦은 시간.
옹기종기 모여 그의 말을 듣는 우리는 킬킬댔었다.

나는 재수를 할 때다.
해가 뜨기 전에 독서실에 들어가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향했다.

20주년 콘서트랬다.
‘그대에게’로 데뷔한 그의 20주년.
공교롭게도 나의 20번째 생일이 있던 해였다.

……

하지만 나는 가지 못 했다.
못 간 걸까, 안 간 걸까.
‘미안 마왕…30주년엔 꼭 갈께’
라는 생각을 하고 약속했었다.

나는 그게 당연했다.
정말 나는 당연했다.

당신이 이렇게 떠날 줄은 몰랐다.

정말…나는 몰랐다.

해질녘이 되어 아스라이 바스러지는 해처럼
당신이 이렇게 가버릴 줄은 몰랐다.

하루 24시간 중, 겨우 1시간을 나를 위해 쓸 시간이 없는 일상이라면
그것은 이미 일상이라 부르기 힘든 일상이다.
당신의 삶을 사는 일상인지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일상인지를 생각해봐라.
1시간, 작은 시간이다.
한달이면 30시간, 꼬박 하루를 더 하고도 넘는 시간이다.
1년이면 365시간, 보름을 지새도고 조금 더 넘는 시간이다.
너의 시간에서 24분에 1도 네가 하고싶은 대로 하지 못 한다면
이미 너의 일상은 무너져 있다, 곧게 세워라.
니 인생은 니 인생이다. 니 삶을 살아라.
1시간 동안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면
창문을 열고 밖을 봐라, 하늘을 봐라.
파랗든 회색빛이든 뒤섞인 색이든, 하늘을 보고 숨을 쉬고 멍을 때려라.
그렇게 나를 위한 1시간을 보내라.
제발.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말, 둘

외로이 사묻혀 흔들리던 나의 10대에
우연히 듣게 된 당신의 저음에 이끌려
듣게 된 고스트 스테이션은
술은 먹어본 적도 없던 나에게
무언가에 취한다, 라는 것이 어떤 건지 알게 해줬다.

나는 당신에게 취해버렸다.

바르지 않음이 없었다.
당신의 말은 힘겹던 내게 와 닿았고
당신의 노래는 내가 소년으로 있을 수 있게 해주었다.

꿈을 꾸고 이상을 쫓는 소년으로 남게 해주었다,
당신은 내게 그런 의미가 되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제목 그대로 나라는 소년에게 당신은 해가 되어 주었다.

20대는 좌절할 자격이 없다.
20대가 좌절하면,
10대는 무엇을 바라고 20대를 향할 것이며
30대는 무엇을 떠올리며 삶을 지향할 것인가.
가장 빛나고 예쁘고 멋지고 당당해야 할 너희들이다.
좌절하지 마라, 그 단어조차 입밖에 내지 마라.
쪽팔리지 않냐, 니들이 좌절한다는 건.
넘어졌으면 일어나 다시 걸어.
못 걷겠으면 굴러, 20대는 그래도 되.
온 몸이 진탕되고 흙먼지에 둘러쌓이고 콜록여도 되.
20대는 그래도 되, 그래도 되는 나이고, 그래야 할 나이야.
실패해도 되, 실패하면 어때.
실패는 얼마든지 해도 되.
하지만 좌절은 하지 마.
니들은 그럴 자격이 없어.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말, 셋

해가 없어서, 소년은 방황한다.

당신이란 해를 바라보면서 살아온 소년은,
올해 30살이 되었다.

나의 20대는 당신의 말마따나 좌절을 모르고 살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도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압박 속에서도
힘들다, 힘겹다 슬퍼지려 할 때에도..
창 밖을 보고 하늘을 보고 매일 1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보내며
민물장어의 꿈을 들으며 나를 다독였고
좌절하지 않고 걷고 뛰고 넘어지고 뒹굴었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당신과 함께했다.

올해, 나는 30살이 되었다.
그리고 당신은 내 곁에 있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상하리만큼 다난한 일들이 비재하기 시작했고
그 틈바구니 안에서 나는 지쳐가는 중이다.
키를 잃은 외항선처럼 방향을 잃었고
해이된 것처럼 옳고 그름을 판별하지 못 하고 있다.
좌우가 바뀐 것도 아닌데 들고 있는 손이 오른손인지 왼손인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잃은 갈피를 찾아서 책장을 몇 번이고 넘기게 되었다.

이제 20대가 아니다…
그럼 이젠 좌절해도 되는 게 아닐까.

이게 다 당신의 부재때문이다.

해가 없으니까, 소년이 방황하는 거다.
기다릴 사람이 아스라졌는데 stand for you가 무슨 의미가 있는 지.
커버린 나는, 무슨 꿈을 꿔야 하는 건지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여러분, 나를 믿지 마요.
나는 언제고 여러분의 뒷통수를 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를 믿어요? 에이 왜 이래요 우리사이에.
그런 얄팍하고 심증적이고 미신적인 건 어울리지 않아요.
난 빈대떡과 같은 인간이야, 어제 한 말? 오늘도 뒤엎을 수 있어.
어제 한 생각이 오늘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말야.
그러니 나 너무 믿지마요.
나를 믿지 말고, 너님들 자신을 믿어요.
나중에 내 말 듣고 살다가 내 인생 책임지라고 징징대지 말라고.
그러니가, 여러분의 삶이잖아요.
여러분이 바라는 대로 나아가세요.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말, 넷

믿지 말라면서 믿게 만든다.

해가 지고 들리던 당신의 목소리는 좋았는데
해가 져서 사라진 당신의 모습은 어째서 이렇게 싫은 걸까.

10월 27일, 내가 기억하는 또 다른 하루가 된 날.
당신의 노래들로 가득 채운 하루.
들리는 말, 속삭이듯 귓가에 들리는 당신의 가사.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어
두려움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룰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없이.

민물장어의 꿈, 신해철.

해가 없어서 소년은 방황한다,
다난한 일에 쫓겨 당신의 부재에 슬퍼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표를 정해줄 이가 없어서 갈피를 못 잡는 거라고.
너무 답답하니 빛을 비춰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소년이 방황하면 해가 없을 뿐이었다.

내가 방황을 하기에 해를 찾지 못 할 뿐이었다.
해는 언제나 그곳에 있는데 내가 길을 잃어 찾지 못 한 거였다.

당신이 남기고 간 노래에
당신은 여전히 있었다.

24시간 중 1시간도 할애하지 못 한 내 하루에
나의 일상은 무너져있었고 다른 일상이 있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 어른이 될 시간이야
너 자신을 시험해 봐, 길을 떠나야 해.
니가 흘릴 눈물이 마법의 주문이 되어
너의 여린 마음을 자라나게 할 거야
남들이 뭐래도 네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츠려 들지마.
힘이 들 땐
절대 뒤를 돌아보지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를 애써 상대하지 마
변명하려 입을 열지 마.
그저 웃어 버리는 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
Now We are flying to the universe.
마음이 이끄는 곳, 높은 곳으로 날아가.

해애게서 소년에게, 넥스트(N.EX.T).

내년이면,
내가 당신에게 약속한 30주년 콘서트가 열리는 해인데
어쩐지 당신을 추모하는 콘서트가 열리는 올해..

사실 당신의 죽음을, 난 아직 믿지 못 한다.
당신의 말을 믿지 말라했으니,
지금이라도 괜찮다..내 뒤통수를 얼마든 내어줄테니
살아있는 당신을 맞이하고 싶다.

긴 여행을 끝낸다던 당신의 여정은
원하던대로 미련이 없었을까.

오늘 보내려던 나를 위한 1시간은
이렇게 온전히 당신을 위해 씁니다, 마왕.

보고싶네요, 진짜.
보고싶어서, 오늘도 당신의 노래를 듣습니다..

- 해에게서 소년에게, 소년에서 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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