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너를 잊지 못 했나, 보다

한가득, 글을 썼다가 지운다.
낯선 이의 다가옴에 햘퀴는 고양이의 손짓처럼
펜 끝으로 세 줄, 네 줄을 그어버린다.
때로는 칠해버린다, 까맣게.

아냐, 이건 아닌 거 같아.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글이 마음을 담고 있어서다.
망설임없이 흐르듯 적어놓고는
오늘도 이내 숨기고 싶어서
몇 자, 몇 구절 그 짧은 사위를 그어버린다.

그러다 10년도 더 전의 이야기를 오늘 끄적인다.

내 글이 보고싶다던,
글에는 쓴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담기기에
나에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며 때쓰던

너의 말이 아직도 내겐 깊이 머물러있다.

그 덕에 10년도 더 지났는데
연필로 쓴 뒤 읽고 수정하고
그 위로 볼펜으로 다시 쓰며 또 수정하고
컴퓨터로 옮기면서 다시 수정하며
옮기고도 몇 번이나 읽어보고 탈고를 한다.

좀 더 신중하려 애쓰고
거짓을 배제하고 사족을 줄여서
온전한 나를 담아내려한다.

누가봐도 나에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누가봐도 나에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그게 비록 네가 아니라, 누구일지라도.

이런 자전적 글을 끄적일때면
몇가지 것들이 거리가 되어 보이는데
오늘은 너인가 보다, 어째서인지.

4월도 아니고 7월도 아닌데.

어쩌면 전하지 못 해서가 아닐까…
아니면 말하지 못 해서가 아닐까…
마지막 인사도 못 해서가 아닐까…?

나는 여전히 네가 부르던
바보처럼 살고 있다.
서툴고, 모자라고, 어리석고,
멍청하고, 의욕만 앞서고, 요령 없이.

거긴 괜찮은지, 잘 지내겠지 하면서도
그냥 문득 종종, 네가 궁금하다.
아주 가끔은.
아주 조금은.

엉엉 울던 그 날 밤의 기억도
기별 없이 끊어진 너의 편지도
그 덕에 의아했던 나의 물음도
그리고 고개를 오르내린 내 원망과 그리움도.
써내린 채 보내지 못 한 수취인 불명의 편지도.

드문드문 나오는 너와의 버릇덕에
아직 내게 네가 남아있구나 라는 걸 알게된다.
영원히 내게 기억되고 싶다던 너의 바람은 이뤄졌고
그럴께 답했던 나의 대답은 내게만 남아있다.
내가 바보라서.

……

무얼 어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할 지 몰라서
보고싶어 무작정 찾아갔던 그 겨울날에
결국 전해주지 못 한 채 내 손에 들려있었던 것이
네가 좋아하던 장미 꽃다발이 아니라

국화였다면

환희 웃는 네 사진 앞에 놓고 돌아설 수 있었을까.
누군가 놓고간 새하얀 송이들처럼
나도 너를 그 곳에 놓고 돌아설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1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내게 네가 남아있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서
네가 내게 남아있구나,라고 생각했을까.

말 없이, 그렇게 연락이 그쳐졌던 것처럼
말 없이, 그렇게 내게 네가 당연했던 것처럼
말 없이, 그렇게 너의 부고를 들었던 것처럼

나는 그냥 문득 종종, 네가 궁금하다.
아주 가끔은. 아주 조금은.
그렇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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