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1년

1년의 시간을 돌아, 다시 7월이 되었다.

1년 전 새벽, 선잠에 깬 나에게 와있던 몇 자 되지 않던 서글픔이 어느덧 1년이 지나있다.
누군가에겐 고작 1년, 누군가에겐 그저그런 1년, 누군가에겐 아주 긴 1년.
나에게 그 시간이 어땠을까, 너에겐 그 시간이 어떻게 흘러 지나왔을까.
나 없는 너의 1년은 어떠했는지, 그 곳에 있지 못 했던 나는 알 길이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너 없는 나의 1년. 내 곁엔 없었지만 언제나 네가 내게 있었던 1년.
하루도 잊지 못 하고 너를 보고싶어했던, 네가 떠올랐던 나의 시간들.
너와 손을 잡고 흰소리를 하다 핀잔을 들어도 네가 있었던 그 시간을 그리워하는 나라는 제자리.
무엇을 하든 네 생각이 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네 생각이 나는 나의 시간.
내가 한 실수들과 미안함, 이기심들이 네게 다가가 너를 괴롭혔을 그 시간들이, 정말 미안하게도 나는 그립다. 다시 그때였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을테니 네 옆에 그냥 내가. 내 옆에 그냥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미안하고 미안한데 미안해서, 이젠 그럴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불쑥 나와버리는 내 마음에 위험을 느낀다.
의도치 않은 상황이고 관계다. 또 잊은채 욕심을 부릴 거 같았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너라서 조금, 아주 조금 같이 있고 싶어서 건넨 자리가 지금과 같은 우리들의 사이가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내 마음과 감정이 여전히 1년전과 다를게 없기 때문에.
나는 내가 또 내 감정에 취해버릴까, 그래서 너에게 또 실수를 해버리는 건 아닐까.
매 순간 조심하자고 의식하면서도 그러질 못 했다. 네 앞에서는 다짐같은 게 너무 쉽게 잊혀지고 서툴기만한 감정이 그 위에 내려앉아버린다.

나는 내가 제법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했었다.

그러질 말아야지 하는 생각들이, 오늘은 그래야지 하는 다짐들이
해가 떠서 밝아진 아침처럼 어쩐지 네 앞에만 서면 하얘져버린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장고 끝에 악수만 두는 것 같다.
더듬듯 어눌히 뱉어버린 말들은 해도 되는 말이었을까,
언제나 복기하는데 언제나 다음 수는 같은 장소에 두고 있다.

너에게 실망을 주지는 않았을까. 네가 좋아할까. 나를 이상하게 보면 안 될텐데.
이 말을 듣고 내게 실망했으면 어쩌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이게 내 진심이라 생각하면, 나는 어쩌지.

살아생전 읽어 온 책을 쌓아보라면 못 해도 3층 건물은 넘을텐데
그 많은 읽은거리들은 어디로가고 내 머리는 그렇게 비어버리는 지.
네가 좋아할 만한 말을 하고 싶고, 네 마음에 드는 말들만 골라서 하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고, 나는 매일 왜 실언들만 네 앞에서 나열하면서
홀로 남겨졌을 때 그렇게 후회하고 허탈해하면서 네 앞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던 걸까.

내가 그리 뱉은 말들이 네게 얼마나 상처이고 닿지 못하고 바보 같아 보였을까.

……

그렇게 비이성적인 시간을 보내고도 이토록 감정적인 내가 너무나 모순인거지.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글을 끄적이며 너를 생각해버리는 거지.

1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1도 나아진 것 없는 내 감정이 먹먹하다.
아닌 걸 아는데,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아는데, 네겐 내가 아니라는 걸 아는데.
이성적인 인지를 분명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게 향하는 감정의 방향이
정방향인지 역방향인지를 분간하지 못 하고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걷다가도 뒷걸음질을 치고, 앞으로 걷는 건지 뒤로 걷는 건지.
그런 사이를 반복하고 있다.

나는 너무 불안하다.

그건 마치 모순처럼 이성과 감정의 방향이 등을 지고 서 있어서,
이성을 따르다가도 감정이 나와버리고 감정을 따르다가도 이성이 나와버린다.
네 앞에 있다는 것, 네 생각만으로도 나는 병이라도 걸린 것 마냥 주체적이지 않아진다.
숨기지 못 해 열을 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숨을 따라 미온해진다.

그렇게 바라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맨, 그러고도 제자리인 1년이다.

1년이란 시간이 지나서.
어쩌다 너를 볼 수 있는 상황에 자리해버린 내가 요즘 제일 걱정하는 것은
정리되지 않은 내 마음으로 인해 네게 다시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내가 평소처럼, 다분히 이성적이라면 애초에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이 산적해 있는 지금은 다시 한 번의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할까 싶어 걱정을 하며 불안해 한다. 손톱을 깨물 방구석에 주저앉은 어린 아이처럼 눈치를 살피고 떨며 불안해 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대하는 너와 다시 예전처럼 나를 숨기려는 나와
꺼내버린 이후 정리하지 못 한 마음과 외줄타기 마냥 아슬아슬한 이성의 중점에서
술이라는 변수와 너라는 허물어짐의 경계 앞에서 갈등하는 내가, 그 불안의 원인이다.

……

아니, 사실은 내가 아직 너를 좋아해. 니가 너무 보고 싶어, 지금도..

후.

하지만 나는 네게 아니라서.
아닌 내가 네게 아님을 부정할까봐.
그 부정으로 인해 네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내 감정을 내세워서 너를 상하게 할까봐.
그래서 네가 내게 다시 아니라고 할까봐.
그래서 내가 결국 다시 네게 아닐까봐.
다시 그 새벽처럼 서글플까봐.
이불을 끌어안고 다시 울까봐.
땅을 쳐도 풀리지 않는 후회가 찾아올까봐.
그 먹먹한 슬픔이 또 자리할까봐.
그렇게 또 1년을 보낸 뒤에, 다시 이런 글을 쓸까봐.
너를 보고픈 마음과 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부딪힐까봐.
그 부딪힘의 끝이 다시, 너를 향할까봐.

네게 내가 아니어서 네게 또 미안해지고 미안함을 줄까봐.
좋아하는데 보고싶은데 내가 엉망인데 내가 그래서 네게 아니라서.

아니란 그 말이, 나는 이제 너무 싫어서.
그래서, 그래서.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