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들과의 대화에서

요근래 동기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제법 빈번한 주제로 이야기 되었던 건
행복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들 나이를 얼추 서른을 넘기니
그런 이야기들을 자연스레 꺼내게 된 건지,
혹은 그냥 원래 그런 성격들인건지 알 수는 없으나
우리는 곧잘 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문득 언제부턴가
내가 그 주제에서 어긋나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동기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 켠이 찝찝한, 뒤가 남은 듯한 기분.

뭘까, 뭐가 이렇게도 낯설고 어색한 걸까.
한참을 고민해도 알 수가 없었다.
곁다리 걸치듯 동기들의 의견에 편승해서 의문은 숨긴 채 태연히 어울렸다.

생각을 말로 내뱉는 것이 비어있는 공간 위로
테트리스를 해나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내 생각이라 생각하고
내가 내 입으로 말을 하지만
그 말에 내 진의는 담아내지 못 하는 느낌.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섣불리 입 밖으로 꺼낼 때
느껴지는 스스로가 설득되지 못 한 이질감.

그렇게 시간이 지나 오늘에서야
그 낯선 감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떠들던 주제는 행복이었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즉, 행복한 삶.

……

아이러니였다.
넌센스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옛적부턴 모순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기도 한 느낌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너댓번도 더 죽는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어떻게 죽을까, 혹은 죽게 될까.

자연사일까
병사일까
자살일까
타살일까
돌연사일까
안락사일까
급사일까
사고사일까

지금하고 있는 나의 생각과 의식은
다음이라 정의된 찰나의 순간까지도 이어질 수 있을까.

다음은 언제까지 다음으로 내게 있을까.
내게 다음이 있을까, 다음에 내가 있을까.

일상이란 이름으로 정의된 내 삶의 내일은
지금 눈을 감고 잠이 들어 꿈 속을 헤매다 깨었을 때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반복되는 시간일 수 있을까.

어쩌면 눈을 감는 이 순간이 내 삶의 마지막이 아닐까.

자는 사이 건물이 무너지면 내 집은 5층이니 무사히 살긴 글렀지..
겨울이니 전기장판을 쓰는 어느 집에 불이 날지도 몰라..
혹은 방화범의 흔한 범죄일지도 모르지..
그러고보니 소화기는 3층 계단에 있었던 거 같은데
아, 씨발 좆 됐네.

골목을 걷다가 차에 치이진 않을까.
잘 가던 지하철이 멈추진 않을까.
내가 탄 비행기가 떨어질지도 모르지.
지진이 나서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고.
공사현장을 지나가다 벽돌이 머리위로 떨어지거나
느닷없이 칼로 난자당하는 묻지마 살인에 희생자일지도 모르지.

하루가 멀다하고 나는 죽음을 생각하고
살아감의 끝을 떠올리고
지금 내가 하는 생각, 행동, 관념, 행위.
이 모든 것들이 멈춰지는, 말 그대로의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에 대해
잔뜩 겁을 먹고 마음 한 켠에 늘 두고 살아가는데

정작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삶이라니, 행복이라니.
있을 지 없을 지 알 수 없고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다음이라니.

기조가 다른데 뻗어나온 관념이 같을 리가 있나.
그러니 어긋나서 부자연스러운 것이 되려 자연스러운 것이 었을 것이고
모래알을 씹은 것 마냥 까끌댔던 거겠지.

예전에는,
그 예전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희미한 그 때에는
나도 다음을 이야기했고 내가 행복하기 위한 지향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조금이라도 더 환해지고 웃을 수 있기를 바랐는데

지금은 그저 침잠한 채로
올 지 안 올 지 모를 다음의 불확실성으로 불안해하고
그럼에도 이어지는 지금으로 인해, 내일로 인해
매순간 늘 끝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나는 그러하게 되었고, 그러하다.
그래서 동기들과 이야기하는 행복에서
언제나 이질감을 느끼고 입을 다물게 되어버린다.
동조할 수 없는 생각들에 입 한 뻐금 어울릴 수는 없으니까.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