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베트남, 하노이 사파

00-1.이 여행의 발단

작년, 그러니까 2017년의 10월.
4번째 유럽 여행이었던 독일-체코를 다녀온 직후였다.
10월 12일에 귀국을 했으니, 19일인 그 날은 딱 일주일 되던 날이었다.

꽤나 정신없이 일상에 적응해가던 때였다.
인천에는 오후 1시에 도착을 했고 같은 날 내 사원증은 오후 3시에 회사 출입문에 태그되었다. 20여일이 조금 안 되는 여행이 무색하게도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묵직한 카메라를 매고 높지 않은 지붕들로 가득찬 골목골목을 한가로이 거닐면서, 하이, 헬로하고 인사하며 시원한 맥주와 함께하던 나날들. 내가 유럽을 다녀 온 꿈을 꾼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은 코 앞에 와 있었고 이미 내 손은 키보드를 두들기고 눈은 모니터를 쫓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맞이한 10월 19일, 목요일.
아마 점심을 먹고 오후일과를 시작하던 때쯤 이었던 것 같다, 사당거주민들의 단톡방이 알림으로 반짝이기 시작한 것이.

내가 사는 사당에는 총 4명의 회사 동기가 살고 있다.

사당에 있는지도 몰랐는데 이사 올 때가 되어서 알아보니 어쩌다 알게 된, 가장 먼저 사당에 자리를 잡고 있던 공채 10명반의 홍일점이자 술을 되게 좋아하고 술에 취하면 꺠는 걸 싫어해서 술 먹고 노래방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센척은 되게 하는데 속은 또 전형적으로 여리고 아닌 척 하면서 주변 신경많이 쓰는 A.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내가 사당에 이사오기 일주일 전에 이사를 들어온, 인연이다 못 해 이제는 이사 타이밍까지 이어지나 싶을 정도로 신입사원 연수때부터 같은 팀이었고 같은 계열사로 와서 같은 팀에 소속되어 10명남짓한 공채반에서 함께 수업을 듣고 지금까지 연을 이어오는 B.

멀쩡한 집 놔두고 술 먹으러 사당오다가 결국 독립까지 해버린, 이선균 목소리가 트레이드 마크인데 평소엔 안 하다가 술 좀 먹이면 종종 봉골레 파스타 하나를 외치는, 인간이란 왜 일을 해야 할까를 일상처럼 질문해대는 쓸데없는 철학가이자 늘 찡찡대면서 내게 툭툭 털털대는 C.

거기에 멀쩡히 상암에서 출퇴근 지근거리로 잘하다가 느닷없이 사당 갈 거라며 이사를 와놓고는 여태까지 바쁜척은 오지게 하면서 집들이를 하지 않는, 술은 공채 10명 중에 제일 못 먹는 주제에 쓸데없는 술부심을 부리는, 제주도 출신이며 되게 어벙한데 되게 순박하고 착해서 또 쓸데없이 정이가고 정도 많은 큰 곰 같은 D.

적고보니 정말 개성 넘치는 동기가 아닐 수 없네.
그렇게 반짝이기 시작한 대화의 시작은 B 였다.

지금 J 항공 3월 특가 떴다, 난 친구들이랑 라오스 지름

처음엔 늘 그렇듯 점심 후니 졸리기도 하고 잠도 깰 겸 시시콜콜하 이야기나 하나 싶었는데, 특가 항공권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참고로 B는 내가 독일-체코를 간 시기에 남미를 한 바퀴 죽 돌고 온 동기였다. 나보다 하루인가 이틀 정도 늦게 출국했는데 귀국은 한 사나흘 정도 늦게 했었다. 내가 너무나 가보고 싶어하는 우유니 사막과 마추픽추는 물론 아르헨티나까지 섭렵하며 다니는 내내 나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
그런 녀석이 느닷없이 J항공의 특가 소식을 알린거다.
여행 다녀온 지 얼마나 됐다고…?

사실 그 즈음에 나는 여행에 대한 권태기가 오던 시기였다.
2017년은 유독 해외여행을 많이 다닌 해였다. 학교후배인 타로와 12년지기 절친 둘기형과 함께 떠났던 2월의 후쿠오카를 필두로 4월말~5월초의 황금연휴의 떠난 To the Galaxy의 몽골. 일본 먹거리의 본고장이라 불리우는 6월의 오사카. 그리고 연이은 7월에 회사 선배들과 방문했던, 보이스카웃 수련대회 이후 20년만에 방문한 제주. 그리고 얼마 전 다녀온 독일-체코까지. 이미 10번의 비행기를 탔던 상태였고 심지어 두 달 뒤인 12월에 오사카를 한 번 더 갈 예정이었다.
그럼 도합 12번의 비행기를 타는건데, 단순 수치로 보면 두 달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왔으니, 지칠만도 했다.
오죽하면 옆 자리의 책임님이 한국사람 아니지 않냐고 놀릴 정도다. 외국인은 3개월에 한 번씩 비자 만료되니까 맞춰서 나갔다 오는 거 아니냐고…듣다보면 참 그럴듯하다.

그래서 아, 내년엔 여행도 좀 쉬어야겠다. 추석에도 이제 그만 나가고 본가에도 좀 가고 그래야지. 아, 아니면 추석에 부모님 모시고 한 번 정도나 나갔다 올까? 라며 다가올 2018년을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랬는데, 특가라니?
내가 항공권을 지르는 경우는 딱 2가지 조건을 만족했을 때다.

하나, 특가인가.
둘, 가기 좋은 날인가.

첫 번째 조건을 예로 들자면, 갈 수 있는 곳마다의 가격 정책 마지노선이 나름 정해져 있다. 일본은 대략적으로 16만원 이하, 중국은 20만원 이하, 유럽은 100만원 이하. 일본의 경우에는 지역마다 가격의 상한이 달라지는데 후쿠오카는 12만원, 오사카와 오키나와는 16만원, 삿포로는 25만원정도 선이고 유럽의 경우에는 100만원 이하면 거의 80% 정도 질러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상태라고 보면 된다.
특히나 유럽은 처음 갔을때 120만원이라는 고가의 항공권을 구매하고도 2번이나 트랜스퍼를 겪으며 편도 37시간의 비행으로 다녀온 경험-물론 떠나기 2주전에 급 지른 여행이라 당연히 비쌀 수 밖에 없었지만-이 있기에 100만원이하에 트랜스퍼 0~1회라면 내게는 너무나도 좋은 조건으로 생각이 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조건으로 언급한 가기 좋은 날이냐, 는 것의 의미는 휴가를 며칠이나 써야 갈 수 있는 곳인가, 이다. 매년 3월에 리셋되는 나의 연차는 최대 15일이다. 한 달에 하루를 쉬어도 3개가 남아서 되게 여유로워보이지만, 사실상 휴가라는 것은 붙여써야 제 맛이다.
특히나 나처럼 유럽병이 들어있는 여행자들은 전체 일자 중 최소 반절은 유럽여행에 투자를 해야하기 때문에 실로 모자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항공권이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휴가를 많이 써야한다면 섣불리 항공권을 지르지 않는다. 게다가 항공권 구매층을 봐도 평일 항공권의 경우엔 아주 싸다. 주말이 TOP라면 평일 항공권은 자판기 믹스커피 정도수준 일때도 많다.
하지만 평일에 그 항공권을 산다는 건 나로써는 휴가를 써야 한다는 의미고 그렇게 되면 휴가라는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기에 두 번째 조건으로 가기 좋은 날인가를 따지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회사에 경우에는 자율 출퇴근제가 시행되고 있기에 금요일 오후에 출국하고 월요일 오전에 귀국하여 출근을 하면, 휴가를 하나도 쓰지 않고 3박 4일의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점을 이용하여 일본이나 중국과 같이 가까운 나라는 최대한 부담없이 다녀올 수가 있었다. 사실 그래서 올해만 2,6,12월에 일본을 가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셋 다 특가로 구매한 가격이고 휴가를 전혀 쓰지 않고 다녀오는 항공권이다.

그런 조건으로 항공권을 구매해오던 나에게 일단, 1차 조건을 만족하는 말이 B로 부터 흘러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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