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이라는 거

선택은 있어도 정답은 없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정답인지 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정답일까.

정답의 정은 바른 정자다.
5획으로 그어지는 한자.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정답은 ‘옳은 답’이라고 알려준다.

각자의 삶이 옳지 않았던 이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도덕적, 윤리적, 인륜적 패악질을 부린 이라도
행할 때는 본인이 옳았을 텐데.

결국은 죽을 때가 되어서 깨닫는다는 정답은
정의할 수 없는 삶을 가늠하는 잣대로써
필요에 의해 소환된 도구적 언어일 뿐이다.

삶의 정답은 없다.
그럼 삶의 마지막 순간에야 알게 된다는 건 무엇일까.
나는 그게 정답이라는 말로는 판정내릴 수 없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결정되는 건,
Birth와 Death 사이에 Choice가 있듯이
살아 온 삶의 모든 순간에 해야했던 선택.
그리고 그 순간을 선택했던 결정에 대한 정답, 혹은 오답이 아니라
결국은 나의 기준으로 나는 만족하는 가이다.
그리고 그 만족의 기준은 당연하게도 누구나 다르다.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도 다르다.

한 달에 얼마를 벌어야 만족하는가.
200? 300? 천? 억?
나는 S기업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
100을 조금 넘는 월급을 받았다.
그래도 만족했다.
먹고픈 걸 먹고 동기들과 놀고 후배들 밥도 사주고
다음 학기 등록금에 절반을 내가 번 돈으로 충당했다.

월 100쯤에 만족한 삶을 살았다.
다른 회사에 취업해서 지금의 시선으로 보자면
월 100 남짓이라니, 이번 달 카드값도 못 채우겠다.
그 돈을 받고 일을 하라? 불만족이다.

아니, 그 전에 만족의 여건이 돈이어야 한다는 전제부터 수정해야 한다.
사람마다 가지는 가치는 돈의 액수만큼 다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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