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비가 온다. 장맛비다. 아침부터 가늘게 내리던 아이들이 어느덧 조막만해지더니 장대가 되어 내리고 있다. 빗무리로 가득차서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내리는 비가, 바지 밑 단을 축축히 적신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 며칠전부터 이어진 장마 예보에 가장 큰 우산을 챙겨 나갔지만 역부족이었다. 머리와 가방 언저리는 젖지 않았지만 우산 끝자락이 닿지 않은 아래는 도리가 없다. 그냥 비가 오니까 젖는 수밖에, 흠뻑.
어차피 젖기 시작한 거 별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첨벙대며 걸었다. 바지가 젖든, 양말이 축축해지든, 신발이 물컹해지든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우산 위를 때려대는 빗소리는 우박마냥 둔탁했고 내 귓가엔 비긴어스의 Falling Slowly가 들려온다. 이소라의 애절한 목소리와 윤도현의 먹먹하고 잔잔한 협음이 나를 감정의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 내리는 비는 이리도 빠른데 노래는 느리다. 젖은 신발과 양말이 물 먹은 스펀지 마냥 질퍽해질 때쯤이야 집에 도착했다.
송이송이 맺힌 물방울을 툭툭 털고 우산을 곱게 접어 문 밖 손잡이에 걸어두고는 집으로 들어와 신발을 벗었다. 젖어서 질펀한 신이 가까스로 벗겨지고 양말을 벗어 맨발로 걸어들어왔다. 젖은 양말을 빨래 더미에 두고는 수건으로 발을 훔쳤다. 그제서야 토도도독, 토도독 거리는 빗소리가 창 밖에서 들려온다. 다행히 창은 닫고 출근한 덕에 창가에 책도, 스탠드도, 가방도, 의자도, 책상도. 어느 것 하나 젖지 않고 무사하다.
글을 쓰다보니 생각의 흐름을 따라 쓰고있는 느낌이다. 시작은 비 오는 느낌을 글에 담아내고 싶었던 건데, 펜을 놓고 고개를 들고 떨어져 다시 보니 일기를 쓰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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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쟁이,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

이준익 감독(이하 이준익)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그게 누군데? 라고 물어볼 사람들을 위해 간략히 언급을 해보자면 그냥 영화감독이다.

물론 봉준호나 박찬욱처럼 글로벌 네임드라고 불리기엔 조금 애매하다. 아, 애매하단 거지 모자라다는 게 아니다. 내 기준으론 이준익 감독도 충분히 그들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간의 그의 작품을 보면 찍는 영화의 느낌이랄까 류가 다르다. 정확히는 충분히 능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렇게까지 욕심을 부리는 영화를 찍는 느낌이 아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심검의 경지까지 터특한 무림의 은거고수 같달까.

이준익은 나에게 있어선 ‘이준익 영화 = 극장’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아마 내가 배우의 이름이 아니라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 첫 영화감독일거다(아,물론 심형래 감독도 있지만..이 사람은 좀 예외로 두자)

대표작은 누구나 이름은 들어봤을 법한 ’왕의 남자’.

대한민국 영화 사상 첫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고 이준기를 일약 스타덤에 올렸으며 그 덕에 예쁜 남자 신드롬이 일어나고 미녀들은 석류를 좋아해야했다던 영화가 바로 이 분의 영화다. 아직도 감우성과 이준기의 나 여기있고 너 거기있지를 비롯해 마지막 줄타기 점프신은 마음 깊이 남아있을 정도의 영화다.

거시기해서 거시기한 거시기에 거시기 해불면 거시기하니께 거시기혀서 거시기 해불더라고, 라는 거시기 명대사를 남긴 ‘황산벌’, 중년의 아재들이 모여 꿈을 노래하는 활화산(feat.볼케이노) 밴드의 ‘즐거운 인생’, 흑백으로 담담히 그려내고자 했지만 영화에 담긴 감정은 담담하지 않았던 별을 헤는 ‘동주’등등. 어느 영화를 떠올려도 작품이란 표현에 모자람이 없는 영화를 만드는 영화쟁이, 이준익이다.

영화쟁이 이준익, 이 두 단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다.

예전에 마비노기를 한창할 때 Gravity 라는 길드에 몸 담았던 적이 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보내고 즐거웠고 슬퍼하고 화내며 지냈었다. 이 때에 대한 이야기들로 글을 써도 카테고리 하나를 별도로 빼야 할 정도로 나에게 많이 남아있는 시간들이었다.

당시에 함께 지내던 길드원 중 ‘템펠’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동갑내기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꿈이 만화가였다. 아마 덕력으로만 따지자면 탑레벨이 아닐까 싶은 이미지의 친구인데 당시 그림은 그나마 조금 그리지만 스토리텔링이 많이 부족했다. 전형적인 그림전문타입이랄까. 그랬던 템펠이 어느 날, 종종 팬 페이지에 단편을 올리던 나에게 협업을 요청했다. 쉬이 말하면 글 리퓨, 그림 템펠의 작품을 하나 만들자는거였다(당시 내 캐릭명이 리퓨였다)

그래서 나왔던 작품이 Team Gravity : First Press였었다(길드 이름이 Gravity의 첫 에피소드라고 First Press 라는 작명센스는..으, 부끄러워) 많은 사연으로 인해 기획되었던 Third Press 까지는 연재하지 못 한 비운의 작품이지만, 그와 동시에 내 글쟁이 인생 최초의 완결작(1부는 완결했으니)이다. 아쉽게도 당시의 템펠은 의욕만 앞서는 녀석이라 내 글을 그림으로 옮기지 못 했고(글은 1부가 완결이 됐는데 그림은 프롤로그까지였으니) 다음 해에 애니메이션 특성화고로 편입인지 전학인지를 가서 그림 수련에 매진하기 시작했었다.

하여튼 그래서 당시에 템펠이 스스로를 칭하던 호칭이 그림쟁이였다.

쟁이라는 건 ‘그것과 관련된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 혹은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을 지칭한다. 그 낮은 호칭이 너무 낯설고 마음에 들었던 나는 뜻에 따라 글쟁이를 자처했고 2화까지 올라왔던 우리의 만화에도 글쟁이 리퓨라는 닉네임이 새겨졌었다. 그 이후로 나는 늘 글쟁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두고있고 취미는 글쓰기에 특기도 글쓰기로 적는 녀석이 되어있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글을 적고 생각을 담아내면서 한 때는 글을 쓰면서 먹고 살고 싶다라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이 말을 했다가 어머니한테 호되게 많이 혼났었다. 밥 빌어먹고 살 일 있냐며, 빈 말이 아니라 정말 뒤지게 혼났었다. 어리지 않은 고2때의 일이지만 그 날 받은 상처는 꽤나 깊었고 나는 아직도 쉬이 현재의 상황을 내려놓지 못 하고 있다. 글도 원하는 때에 언제든 늘 쓰는게 아니라 이렇게 시간이 날 때 틈틈이 쓰는 정도가 되었고 말이다.

그렇게 본업이 아님에도 나는 언제나 ‘글을 쓴다’는 걸 포기치 못 한 채 여전히 어디서든 글쟁이를 자처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글쟁이라하면서 글쟁이가 아닌 내가, 이준익감독의 인터뷰에서 영화쟁이라는 표현을 보자마자 그 표현 자체가 너무 그립고 먹먹해져서 다시 이렇게 펜을 들고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이준익은 영화쟁이답게 계속해서 실패를 하면서도 영화라는 자신의 쟁이를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그는 왕의 남자라는 대작을 만들었고 그 덕에 연이을수도 있는 거겠지만, 그럼에도 그의 영화들은 흥행하든 흥행하지 못 하든 그의 색채가 뚜렷하게 묻어나는 그를 담고 있는 영화다. 그는 인터뷰에서 실패가 무섭다고 했다. 무서운데도 계속한다. 그가 영화쟁이라서, 영화를 업으로 삼았기에 계속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들었던 생각의 핵심은 글쟁이를 자처하던 나는 그의 앞에서 어디에 있어야 마땅한 존재인가 라는 거다. 외나무 다리라거나, 골목길에서라거나 그를 마주했을 때 나는 영화쟁이인 그의 앞에서 떳떳한 글쟁이로써 가슴을 펴고 앞을 바라보고 눈을 마주칠 수 있는가. 나는 지난 몇 년간 글을 쓰고는 있었는가. 생각의 깊이는 어디였던가. 빠지지 못 하고 안주하지 않았던가. 짧은 몇 마디 문구를 적고는 스스로 뿌듯해하며 만족이란 함정에 고개를 끄덕이진 않았던가. 하나의 주제에 논리를 정리할 수 있는가. 나는 창고 구석에 방치된 선물받은 식칼처럼 너무나도 무뎌져 있지 않은가. 글쟁이로서의 나는 어디에 있는 건가.

나는 여전히 글쟁이인가.

얼마전 네이버에 개설해뒀던 내 블로그를 방문해봤다. 그리고 글 카테고리에 올려둔 몇 개의 글들을 진지하게 읽어봤다. 지금의 나에게 종이와 펜을 주고 써보라한다면 과연,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에 올라와있는 글은 대부분 군에 있을 때 쓴 글이다. 점심시간과 취침시간, 시간이 허용하는 모든 순간에 틈틈이 글을 썼다.

병영문학상에 제출도 해보고 불꺼진 내무반에서 모포를 뒤집어 쓴 채로 후레시 불에 의지해 끄적이기도 했었다. 당시엔 읽고 또 읽어봐도 마음에 쏙 들지 않는 필력을 탓하며 엉망이라 했던 글들이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 정도의 글 조차 쓸 수 있을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만큼 감정을 전달할 자신이 없고 쏟아내고 담아내고 표현 할 수도 없었다.
글을 읽으면 그때의 내가 어떠했는지, 어떤 감정이었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가 너무 생생히 느껴져서 오히려 서글퍼졌다. 지금의 나는 내가 쓴 글에 나를 담아낼 수 있을까. 8년전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솔직하고 꾸밈없고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 미안해졌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아지지 않은 내 모습에.
그러면서도 글쟁이를 논하는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숙고해졌다.

나는 정말 나로써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글쟁이일까.
다시 8년 뒤의 내가 이 글을 보면 또다시 미안해하게 되는 것일까.
나의 글은 내가 나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고 있지 않은 나는 나일까.

그래서 나는 글쟁이일까, 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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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년

1년의 시간을 돌아, 다시 7월이 되었다.

1년 전 새벽, 선잠에 깬 나에게 와있던 몇 자 되지 않던 서글픔이 어느덧 1년이 지나있다.
누군가에겐 고작 1년, 누군가에겐 그저그런 1년, 누군가에겐 아주 긴 1년.
나에게 그 시간이 어땠을까, 너에겐 그 시간이 어떻게 흘러 지나왔을까.
나 없는 너의 1년은 어떠했는지, 그 곳에 있지 못 했던 나는 알 길이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너 없는 나의 1년. 내 곁엔 없었지만 언제나 네가 내게 있었던 1년.
하루도 잊지 못 하고 너를 보고싶어했던, 네가 떠올랐던 나의 시간들.
너와 손을 잡고 흰소리를 하다 핀잔을 들어도 네가 있었던 그 시간을 그리워하는 나라는 제자리.
무엇을 하든 네 생각이 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네 생각이 나는 나의 시간.
내가 한 실수들과 미안함, 이기심들이 네게 다가가 너를 괴롭혔을 그 시간들이, 정말 미안하게도 나는 그립다. 다시 그때였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을테니 네 옆에 그냥 내가. 내 옆에 그냥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미안하고 미안한데 미안해서, 이젠 그럴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불쑥 나와버리는 내 마음에 위험을 느낀다.
의도치 않은 상황이고 관계다. 또 잊은채 욕심을 부릴 거 같았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너라서 조금, 아주 조금 같이 있고 싶어서 건넨 자리가 지금과 같은 우리들의 사이가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내 마음과 감정이 여전히 1년전과 다를게 없기 때문에.
나는 내가 또 내 감정에 취해버릴까, 그래서 너에게 또 실수를 해버리는 건 아닐까.
매 순간 조심하자고 의식하면서도 그러질 못 했다. 네 앞에서는 다짐같은 게 너무 쉽게 잊혀지고 서툴기만한 감정이 그 위에 내려앉아버린다.

나는 내가 제법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했었다.

그러질 말아야지 하는 생각들이, 오늘은 그래야지 하는 다짐들이
해가 떠서 밝아진 아침처럼 어쩐지 네 앞에만 서면 하얘져버린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장고 끝에 악수만 두는 것 같다.
더듬듯 어눌히 뱉어버린 말들은 해도 되는 말이었을까,
언제나 복기하는데 언제나 다음 수는 같은 장소에 두고 있다.

너에게 실망을 주지는 않았을까. 네가 좋아할까. 나를 이상하게 보면 안 될텐데.
이 말을 듣고 내게 실망했으면 어쩌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이게 내 진심이라 생각하면, 나는 어쩌지.

살아생전 읽어 온 책을 쌓아보라면 못 해도 3층 건물은 넘을텐데
그 많은 읽은거리들은 어디로가고 내 머리는 그렇게 비어버리는 지.
네가 좋아할 만한 말을 하고 싶고, 네 마음에 드는 말들만 골라서 하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고, 나는 매일 왜 실언들만 네 앞에서 나열하면서
홀로 남겨졌을 때 그렇게 후회하고 허탈해하면서 네 앞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던 걸까.

내가 그리 뱉은 말들이 네게 얼마나 상처이고 닿지 못하고 바보 같아 보였을까.

……

그렇게 비이성적인 시간을 보내고도 이토록 감정적인 내가 너무나 모순인거지.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글을 끄적이며 너를 생각해버리는 거지.

1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1도 나아진 것 없는 내 감정이 먹먹하다.
아닌 걸 아는데,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아는데, 네겐 내가 아니라는 걸 아는데.
이성적인 인지를 분명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게 향하는 감정의 방향이
정방향인지 역방향인지를 분간하지 못 하고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걷다가도 뒷걸음질을 치고, 앞으로 걷는 건지 뒤로 걷는 건지.
그런 사이를 반복하고 있다.

나는 너무 불안하다.

그건 마치 모순처럼 이성과 감정의 방향이 등을 지고 서 있어서,
이성을 따르다가도 감정이 나와버리고 감정을 따르다가도 이성이 나와버린다.
네 앞에 있다는 것, 네 생각만으로도 나는 병이라도 걸린 것 마냥 주체적이지 않아진다.
숨기지 못 해 열을 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숨을 따라 미온해진다.

그렇게 바라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맨, 그러고도 제자리인 1년이다.

1년이란 시간이 지나서.
어쩌다 너를 볼 수 있는 상황에 자리해버린 내가 요즘 제일 걱정하는 것은
정리되지 않은 내 마음으로 인해 네게 다시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내가 평소처럼, 다분히 이성적이라면 애초에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이 산적해 있는 지금은 다시 한 번의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할까 싶어 걱정을 하며 불안해 한다. 손톱을 깨물 방구석에 주저앉은 어린 아이처럼 눈치를 살피고 떨며 불안해 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대하는 너와 다시 예전처럼 나를 숨기려는 나와
꺼내버린 이후 정리하지 못 한 마음과 외줄타기 마냥 아슬아슬한 이성의 중점에서
술이라는 변수와 너라는 허물어짐의 경계 앞에서 갈등하는 내가, 그 불안의 원인이다.

……

아니, 사실은 내가 아직 너를 좋아해. 니가 너무 보고 싶어, 지금도..

후.

하지만 나는 네게 아니라서.
아닌 내가 네게 아님을 부정할까봐.
그 부정으로 인해 네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내 감정을 내세워서 너를 상하게 할까봐.
그래서 네가 내게 다시 아니라고 할까봐.
그래서 내가 결국 다시 네게 아닐까봐.
다시 그 새벽처럼 서글플까봐.
이불을 끌어안고 다시 울까봐.
땅을 쳐도 풀리지 않는 후회가 찾아올까봐.
그 먹먹한 슬픔이 또 자리할까봐.
그렇게 또 1년을 보낸 뒤에, 다시 이런 글을 쓸까봐.
너를 보고픈 마음과 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부딪힐까봐.
그 부딪힘의 끝이 다시, 너를 향할까봐.

네게 내가 아니어서 네게 또 미안해지고 미안함을 줄까봐.
좋아하는데 보고싶은데 내가 엉망인데 내가 그래서 네게 아니라서.

아니란 그 말이, 나는 이제 너무 싫어서.
그래서,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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