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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는 버스를 타려다가 배가 고파서 삼각김밥 2개를 샀다.
2개를 묶어 1700원에 팔고 있는 할인상품이었다.
하나는 참치마요, 하나는 김치볶음밥.
덜컥이는 버스를 타고
비 내리는 창 밖을 보면서
찌익, 찌익 2개를 붙여놓은 상표를 갈라버리고
1번 금띠를 잡아 아래로 슥 내려
2,3번 끄티머리를 잡고 벌려버렸다.
아,너무 세게 벗겼더니 김이 찢어졌다, 망했다.
딱딱하게 굳어 차가운 밥알이 씹힌다.
태국쌀도 아닌데 찰기없는 것이 입 안에서 튀기 시작한다.
그러는 와중에 손에 들린 비닐이 신경쓰인다.
버스는 달리는 중이고 입은 우물거리고
버릴 곳은 마땅치가 않다.
좌석 아래, 까만 바닥으로 슬적 둘 수도 있겠지만
왠지 양심이 거슬려 그러질 못 한다.
도덕 시험은 언제나 80점 언저리였던 주제에
이럴 때 20점만큼 행동해도 괜찮을 법하건만.
쓰레기를 주우며 무단횡단을 한다더니, 그 격일까 싶다.
입 안이 고소하다.
역시 영원한 스테디 셀러, 참치마요다.
그러고보니 김 한 켠이 껴있는 비닐에는
마요가 묻은 참치가 묻어있다.
참치에 묻은 마요가 묻은 건지에 대한 모호성은
굳이 지적하지 않도록 하자.
비닐을 어쩐다, 입은 멈추지 않으면서
생각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이래서 본능, 그 중에서도 식욕이 무서운 거다.
아, 물론 개인적으론 색욕이 제일 무서운 거라고 생각하지만.
수면욕은 그 둘에 비하면 어린애 수준이지.
아, 생각해보니 수면욕도 만만한 녀석은 아니구나.
한 번 빠지면 늪처럼 헤어나오지 못 하는 녀석이었지,
매일 아침에 말야.
버스가 멈췄다.
비 맞은 창 밖이라 시야가 밝지 않아 어디쯤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가다서다 가다서다 하는 정도의 준동만 느껴질 뿐이다.
마지막 남은 삼각 김밥의 모퉁이를 입에 던지듯 넣었다.
마지막은 음미가 된다. 센터에 자리잡은 참치, 마요네즈, 제육, 고추장, 스팸이든 뭐든.
메인 디너는 이미 뱃속으로 들어가버린 후고
김과 밥만 남게 된다. 이름에 걸맞는 김밥으로써의 온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감정을 쏟아내던 클라이막스를 지나 더 털어댈 감정이 없을 무렵의 후렴구와 비슷하다.
다 털어낼 게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쩐지 더 애절하고 간절해진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우는지 미친사람인지 정말 몰랐을까요.
하지만 지금 그보다 중요한 건,
내가 산 삼각김밥은 2인 1조였고
하나를 다 먹었으니 다음 김밥의 비닐을 벗겨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비닐을 벗기려면 앞서 벗긴 비닐을 처리해야 했다.
비닐을 든 채로 다음 비닐을 벗겨도 된다.
일이 있는데 일을 받는 건, 직장인이 되어 실컷 겪은 거다.
숙제가 있는데 미뤘더니 어느새 방학이 끝나가더라.
뭐, 그런 거랄까.
하지만 그러다가 비닐에 묻은 참치에 묻은 마요네즈가 손에 묻기라도 하면
혹은 마요네즈가 묻은 참치가 손에 묻기라도 하면
퍽 난감해진다. 휴지 한 장 없는 지금의 상황이고 손 닦을 곳을 찾다가
결국 다시 좌석 아래 까만 바닥을 주시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럼 다시 양심이 손을 번쩍 들어올릴거고 나는 바른 생활과 도덕과 윤리로 점철된
학창시절의 양심론을 꺼내들고 주기도문마냥 외게 될 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래서 결국 김 하나가 껴있는 삼각 김밥의 비닐은
내 가방의 안 쪽 주머니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냥 가방에 넣어두기엔, 읽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책이 신경쓰였다.
책에 참치가, 마요네즈가, 김가루가 묻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매일 책에서 마요네즈와 참치와 김냄새가 나게 될 지도 모를 일이고
그럼 난 또 삼각김밥이 은연중에 끌릴 지도 모르는 일일테니까.
그렇게 주머니 한 켠에 비닐을 잘 말아서 넣어두고 다음 끼니를 꺼내들었다.
이번엔 김치볶음밥 삼각김밥이다.
전주비빔을 먹고 싶었지만 삼각김밥계의 양대산맥인 참치 마요와 전주비빔을 한 데 묶은 할인품목 같은 건,
서른 둘 인생사에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약은 삼각김밥 유통점 같으니.
이번엔 좀 더 조심스럽게 비닐을 벗겨낸다.
참치마요는 마요와 참치만 조심하면 흰 쌀밥이기에 양념이 묻을 걱정을 덜 수 있었지만
김치볶음밥은 다르다, 온통 새빨갛다.
사실 빨갛다기보단 주홍 빛 당근물에 푹 담궜다 절여낸 것 같은 색이지만,
그래도 김치라는 재료에 걸맞게 빨갛다고 하는 걸로 하겠다.
다행히 이번엔 비닐이 깨끗하게 벗겨졌다.
김 한 조각도 비닐사이에 끼지 않았다.
아아, 왠지 모르게 만족스럽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흔들리는 가방 안에서
비닐 사이에 끼인 김 한 조각이
덜렁이고 덜컹이고 덜컥이며 있는데
잘 벗겨진 삼각김밥 하나에 이렇게 만족스러울 수 있다니.
산타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빨간코 반짝이면서 선물꾸러미를 실은
썰매를 끄는 루돌프들을
볼 수 없는 회색 하늘아래 이곳.
납덩이처럼 묵직해져버린 가슴한구석이
땅굴이라도 있다면 그 안으로
변태하지 못한 벌레처럼 스믈거리면서
기어들어가 코어까지 도달하고픈
서글픈 이 날의 아침.
눈을 떠도 변할 것 없던 현실이,
눈을 떠도 변하지 않은게 슬퍼서
비라도 내릴까 싶어 창문을 열었는데
한방울의 겨울비조차 내리지 않아
차가운 겨울의 한기가 짓쳐 들어온다.
눈을 감고 생각을 하고
머리를 늬이고 생각을 하고
불을 끈채 어두운 방안에 홀로 남아
분명 하나가 아닌데 홀로 남은채로
세로로 일관된 벽지를 들여다보며
그렇게 혼자 고독아닌 하나를 곱씹는다.
108번뇌가 이보다 더할까,싶은 생각으로
108번 1080번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이거다, 싶은 해답이 떠오르지않아
다시 길을 찾아 해매 또 여기에 돌아왔다.
제자리 걸음.
라비린토스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밀납날개가 타들어가 추락한
슬프디 슬픈 그, 이카루스라는 존재가
그나마 밀납날개라도 있었던 그가,
너무나도 시기되고 질투된다면
조금씩 조금씩 타들어간 그의 죽음이
너무나도 덧없는 것이 되는 것일까.
밝은 빛을 뿌려대는 모니터앞에 앉아
씁슬한 표정을 지은채로
검은색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슬퍼
또 한번 자조섞인 미소를 짓고는
울어댄다.
눈물을 삼키고, 비명을 삼키고.
입술을 깨문채 주먹을 쥔다.
가슴속에 닻이 내린 선박이
떠날기미조차 보이지 않은채 정박한채로
나를 억누른다.
..살아생전 다시 이런 날을 맞이할까싶은
내 생에 있어서 최악, 극악의 크리스마스 이브날이 지나고
그리고 깨어나 정신차리지 못할정도로
구역질이 나오는 어둠속에 파뭍힌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