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룰렛

딸가락,딸가락.

끝이 뭉퉁한 총알을 매만지는 손길이 차갑기 그지없다.

스윽.

적당히 굵직한 손이 총알을 들어올려 시야를 맞춰본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한없는 어둠. 그리고 그 속의 빛.

툭. 띵티리링.

맑은 쇳소리를 내며 총알이 책상위를 나 뒹군다.

철커덕, 철컥.

책상위를 나뒹구는 총알을 지나친 손길은 그보다 앞에 존재하는 것을 매만진다.
그리곤 앞에 놓여진 가방을 열어 권총을 꺼내 조립하기 시작한다.

철컥.

마지막으로 공이치기를 한번 퉁겨보며 권총의 완성을 확인한 그는
보일듯 말듯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탄창을 툭 털어낸다.

스윽.

그리곤 권총을 들지 않은 나머지 손으로 책상에 있는 총알을 들어서
탄창에 슥 끼워넣는다. 백과사전에 찢어진 한부분을
도로 집어넣듯, 그의 손길은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탁, 털그럭. 팅그르르.

6발 들이 탄창에 1발을 장전한 그는 간단히 손목을 움직여서
탄창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후, 탄창을 회전시켜
탄환의 위치를 모르게끔 해버렸다.
적당한 수로 탄창이 회전한후, 그의 검지가 탄창을 붙잡았다.
회전을 멈춘 탄창은 탄환이 어딨는지 알수없게 된채로
그의 손에 잠시 머물러있었다.

스윽..피식.

조심스레 자신이 조립한 권총을 들어올린 그는,
알듯 모를듯한, 누구를 향한건지도 알수없는 비웃음을 머금은채
작지만 매서운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6개의 동굴에 들어간 1명의 살인자.

끼리릭.

천천히,아주 천천히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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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

헤비스모커의 입김마냥 희뿌연 안개가 주위를 감싸안고 있다.
녹색 머핀들을 힘겹게 떠받친 갈색 기둥들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함인지 기웃댄채로 한 인형을 내려다보고 있다. 여기저기 갈린 틈새는 마녀의 주문에 걸린 마귀처럼 그를 보며 비웃는 듯 했고 빗물이 고인 질척한 땅은 내 발을 붙잡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안개와 나무, 숲, 어둠뿐이다. 등에 짊어진 무게는 제 길을 찾지 못하는 그를 비웃듯 양 어깨를 짓누르며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어디인가, 이 길이 맞는건가.

스스로 자문해 보지만 아무도 가르쳐주는 이가 없다. 그도 그럴 수밖에. 이 길은 그의 길이기에. 그 밖에 알지 못하는 길이다. 어느 누구도 이 길로 오지 않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만이 이 길의 주인이고 개척자이며 퇴행자이기 때문이다. 아니, 명확히 말해 그가 서 있는 자리 외에는 그 어느 곳도 ‘길’이라고 표시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무와 나무사이로 열린 문틈처럼 이동할 공간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미로의 일부다. 한걸음을 옮기면 다시 한걸음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는 지금 껏 자신이 지나왔다고 생각되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자욱한 안개가 그의 시야를 방해했다.
차라리 눈이 먼 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러려니 할 텐데, 이건 보이는 것도 안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길을 찾기가 더욱 어렵다. 위에서 언급했듯 어디로 가라는 지시표조차 존재하지 않는 오지의 길이기에.

“후우, 좋아.”

그는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크게 숨을 내쉰다. 그 모습이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에 입장하던 글레디에이터 같아 얼핏 결연함마저 비친다.
어차피 여기서 멈춰봤자 이 안개마물은 사라지지 않을 거다. 그건 확신 할수 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기억을 되짚어 봤을때 그것 하나만은 이 숲에서 확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답은 나아가는 것 밖에 없다. 자신의 아버지 다이탈로스와 함께 미노타우르스를 피해 길을 찾았던 이카루스처럼. 물론, 밀납날개를 만들어 타죽는 행위따위는 사양이지만.

이제 그는 움직일 것이다. 자, 그럼 어느 방향이 좋을까.
오른손 잡이이니 오른쪽으로 가야할까, 왼발이 앞에 놓여져있으니 왼쪽으로 가야할까. 아니면 앞을 보고 있으니 앞으로? 것도 아니라면 어깨를 압박해오는 이 무거움을 따라 뒤로? 흠, 것도 싫다면 코끼리코라도 한 10바퀴 돌고 신발을 던져서 신발이 던져진 방향으로 갈까. 아니아니…그랬다가 하나뿐인 신발이 안개괴물한테 먹혀 잃어버릴수도 있으니 안되지.

흐음. 어떻할까.

그는 다시 고민을 시작한다. 벌써 몇번째 고민이더라? 라는 생각이 들자 덤앤더머처럼 스스로의 손으로 스스로의 뺨을 때린다.

“이러다 밤 새겠네. 가자, 그냥.”

철퍽.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다. 질퍽한 물 웅덩이가 게임 속 슬라임처럼 튀어올라 그의 바지 밑단을 공격한다. 황토색 물이 바지 밑단을 야금야금먹어 들어오는 그 느낌에 그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첫 발부터 이래서야 원.

“액땜이겠지, 뭐.”

철퍽.

일상을 대면하듯 아무렇지 않게 넘기려던 그의 다음 걸음이 다시 물웅덩이속으로 빠져버린다. 물이 스며들기 좋은 소재인 스니커즈화가 배고픈 거지마냥 흙물을 꿀꺽꿀꺽 빨아들인다.
하긴, 길이 쉽다면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겠지.
아마 다음 발을 내딛어도 흙탕물에 발을 빠트릴 것이다. 짙은 안개때문에 어디가 진흙인지 사흙인지 알수가 없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모른채 걸음을 내딛으면 된다. 흙탕물에 발을 넣으면 털고 다시 내딛으면 되고. 흙탕물이 아니라도 그냥 다시 발을 내딛으면 된다. 쌔까만 눈을 치켜뜬 나무괴물들이 그를 내려다보며 비웃는 듯 하지만 저들의 발목또한 자신처럼 이 흙탕물에 담긴채 묶여있다. 저들은 저기에서 움직일 수 없지만, 자신은 움직일 수 있다.

저벅.

다시 한 걸음.
이번엔 흙탕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엔?
시니컬한 미소가 그의 입꼬리에 걸리고 그는 발걸음을 옮긴다.

가보자 한번.

그 누구도 그를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그의 앞에 있지 않다. 이길에는 그 뿐이다.
이것은 그의 길이기에.
그가 걸어야 할 길이고 그가 걷는 만큼 그가 책임져야 할 선택이다.
그의 걸음은 오늘도 계속된다. 희뿌연 안개괴물이 그의 시야를 방해할지라도. 발묶인 나무괴수가 그를 향해 팔을 휘둘러도. 질펀한 흙탕물이 그의 발을 야금야금 먹어와도.
종종 멈추긴 할 것이다. 하지만 결코 멈추진 않을 것이다.
멈춘다면, 나무괴물들과 그는 다를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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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도착해서

슈우웅.
한 뼘 가량 열린 창밖을 한 톤짜리 트럭이 지나가며 매캐한 바람을 선사한다. 선갈색의 의자들이 열을 맞춘 관광버스 안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앉아있다. 모두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이 버스에 오른 것이겠지. 그것이 개인만의 일이든, 다수간의 일이든 간에 말이야.

“흐응‥.”

그럼 난 왜 이 버스에 타고 있는 거지?

“엄마! 바다! 바다아!”

앞자리에 앉은 여자아이가 신기한 듯 창가에 이마를 맞대며 말했다. 그 소리가 신호탄이라도 된 듯 깨어있는 탑승객들 모두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돌려진다. 태양이 정말 빨간색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바다위로 쏟아지는 햇살들은 마치 깨진 유리창을 보는 것처럼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다도해라불리는 남해의 별칭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바다에는 크고 작은 녹색수풀들이 머핀처럼 솟아나 있었다.
곧이어 기울어져서 떨어지기 직전의 낚시용품점 간판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도로의 양사이드로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야자수들이 가로등처럼 서 있었다.
처음 저 나무를 봤을 때는 지금 꺅꺅거리고 있는 저 꼬마승객처럼 신기해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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