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하다

니가 이 회사를 그만두면 뭘 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 혹은 물음에 솔직히 답하해보라는 것은
나라는 사람의 존재 독립성에 대한 모욕이고 의심이다.

내가 얼마나 직장인이란 단어 앞에 길들여졌는지
내가 얼마나 직장인이란 단꿈에 안주하는지를
가늠하는 물음이며
내가 가진 회사 의존성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네가 가진 회사 의존성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던지는 1회초 첫 타자 초구 같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빌어 명확히 밝히건데
너의 가치관과 세상의 시선이 어떠하든 간에
그것은 결국 너의 세계고 너의 것이기에
뭐라고 입 밖에 내고 지껄이든 너의 의사임을 인정하지만
그 잣대로 말미암아 나를 가늠하려하지는 말아달라, 청한다.

나는 너의 생각과는 다르게, 혹은 너희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절대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정도로
회사라는 집단에 의존적이지 않으며 하물며 종속적이지도 않다.

나는 나로써 언제나 온전하며
그래왔고 그래야하며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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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첫 차

왜 그 시간에 출근하냐는 물음에
내가 지금 탄 버스의 풍경을 보여주는 게
어쩌면 답이 되지 않을까.

자리를 채운 이 사람들이 향하는 곳은
편히 몸 저어 누울 수 있는 내 집 한 켠이 아니라
편히 몸 저어 누울 수 있는 내 집 한 켠을 위한
일자리일테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너만 그런 게 아니라는 이야기도 아니라

그냥 여러 사람들의 다름의 한 켠에
나도 너도 이 사람들도 있을 뿐이라는 거.

그런 당연한 서로의 다름들에 대해
굳이 의문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너의 시선과 행동의 앞에
차갑고 상쾌하기까지 한 이 새벽 풍경이
충분한 답변이 되어주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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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라는 건

재미라는 건 시간가는 줄 모르는 거고
장맛비마냥 거기에 흠뻑 젖어도 좋아서
바보철머 헤벌레 웃으며 빠져드는 거다.
해커톤을 해보니 해 뜨는지 모르고 개발하고 있더라.
해야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고 있더라.
응, 개발은 역시 재밌는 거더라.

그러다가 출근하는 길에 주변을 둘러봤는데
회사원…직장인들은 퇴근을 갈망하더라.
집에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회사라는 장소는 벗어나고자 하더라.
이들은 일하고 싶지 않아하더라. 끔직이도 싫어하더라.

근데 그러면서 왜 나한테 일이 재밌냐고 묻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일이 재밌는데 정작 퇴근은 하고싶다? 정시퇴근을 지향한다?
일이 정말 재밌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하다가
와 시발,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이래야 하는 거 아닌가.
12시 땡하면 점심시간이다! 6시 땡하면 퇴근시간이다!
말하는 이들이 가득한 이 곳에서 왜 나한테 일이 재밌냐고 묻는건지, 원.

내가 재밌어서 취해 있을 땐 뒷담화까고
억울할 땐 입 닫으랬던 사람들이 있었지.
그때 맞은 돌덩어리 때문에 내 유리창은 깨졌고
산산조각이 나서 아직도 종종 디딤발이 따끔거리는데
왜 나한테 또 일이 재미있냐는,
속 뻔히 보이는 질문으로 나를 떠보려 하는지.

2년도 더 지났으니 그때의 기억과 상처들이
개구리를 달고 전역이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뭐, 물론 나한테만 깨진 조각들일테니
그네들의 생각머리에선 이미 아웃오브안중이요, 깊이 없는 샘물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묻는 건
내게 깨진 유리조각 위를 맨발로 다시 걸어보라고하면서
그래, 그 위를 걸어보니 어떤가.
이제 조각들이 좀 자잘해져서 안 아프지 않은가? 라고 물어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진짜 좆같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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